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일자별 경과/2019년 9월 (문단 편집) == [[9월 15일]]: [[세계 민주주의의 날]]: [[홍콩 경찰]] 편파/폭력 진압 규탄 대회 == [[추석]] 연휴를 지나 홍콩 민간인권전선이 대규모 시위를 하겠다고 예고한 날이다. 이 날은 '''[[UN]]이 [[2007년]] 지정한 [[세계 민주주의의 날]](International Day of Democracy)'''이다. 이날 홍콩에서는 '''홍콩 경찰의 편파적/폭력적 집회 규탄 대회'''를 주제로 시위가 열렸다. 송환법이 철회된 상태이기 때문에, 구호는 이제 반송중이 아닌 홍콩 민주화를 뜻하는 '''[[광복홍콩 시대혁명]]'''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이전부터 광복홍콩 시대혁명 구호는 제창되고 있었으나, [[2019년]] [[9월 5일]]부로 [[민간인권전선]]에서 공식적으로 이 구호를 쓰기로 했다. 광복홍콩 시대혁명 구호는 원래 [[홍콩 독립운동]] 계열의 에드워드 렁 본토민주전선 대표가 제안한 구호로, 속내로는 분명히 '''홍콩 독립'''이 들어간 꽤나 급진적인 구호에 속한다. [[광복홍콩 시대혁명]] 구호는 홍콩의 빛을 되찾는 이 시대의 [[민주화]] [[혁명]]을 뜻하는 구호로, 이번 시위가 단순 시위가 아니라 '''[[민주화]] 운동'''으로 승격되었음을 뜻한다. 대규모 시위를 이끄는 홍콩 [[민간인권전선]]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을 모델로 하고 있고, 게릴라식 소규모 시위를 주도하는 홍콩의 학생운동계는 '''[[폴란드]]에서 시작하여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루마니아]], [[발트 3국]][* [[발트 3국]]은 [[동유럽 혁명]] 과정 중에 [[소련]]에서 [[독립]]했다.]을 거쳐서 [[소련]]까지 무너뜨린 [[도미노]]식 [[동유럽 혁명]]도 모델로 삼고 있다.''' 홍콩의 학생운동계의 본심은 [[중국]] 본토의 민주화에도 있는 셈. 기존까지는 송환법이라는 이슈의 절박함 때문에 이런저런 과격한 돌발상황도 나왔고 이러한 것도 이해하고 봐주는 분위기였지만 5대 요구사항 중 핵심인 송환법이 없어진 현재는 더이상 과격행동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이며, 민주화 운동으로 격상된 만큼 고차원적인 투쟁이 요구되어 다시금 화이비(和理非) 즉 '''이성/평화/비폭력'''이 강조되고 있어 과격시위는 점차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부터 전술한 것처럼 과격 폭력시위를 폭력배와 맞먹는 나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민간인권전선은 아무런 경찰의 진압명분을 줄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민전 집회에선 폭력사태가 없는 '''대규모 평화시위'''가 가능했다. 일단 대학생들은 이날 집회를 비폭력 원칙 하에 강행하기로 했다. [[민간인권전선]]이나 홍콩 공민당, 홍콩 민주당 등 [[민주파]] 야당 역시 '''여기까지 밀려서는 대책이 없다'''는 점에 동감하고 있어서 집회 강행 여부는 [[9월 15일]] 오전에 최종 결정하기로 했는데 결국 공식적으론 안전을 우려해 '''취소'''했다. [[9월 12일]] 시위대에 대한 친중파의 '''염산 테러''' 사건 때문에, 친중파 및 [[캐리 람]] 행정부에 대한 홍콩의 여론은 다시 악화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점거 등 극단적 행동이 아닌, '''저들의 야만적 폭력에 화이비(和理非, 평화/이성/비폭력) 정신으로 맞서자'''며 비폭력으로 맞서고 있어 더 이상 극단적 사태는 없다. 송환법도 철회된 이상 굳이 점거 등 무언가를 인질로 잡아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은 아니라서 더욱이 그럴 이유가 없다 . 이 날 자발적 집결을 약속한 시민들도 비폭력 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11079896|기사]] [[중국공산당]] 관영언론 [[환구시보]]의 후시진 편집장이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 대해 [[중국 인민해방군]]의 출동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하며, 홍콩 내부에서 혼란을 수습하는 것이 최우선이라 발언하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9452467|기사]] 지난달만 해도 '''중국군에게 홍콩 시위 진압은 아주 쉬우며, 시위대는 왜 [[선전시]]에 무장경찰대가 집결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며 위협했던 태도와 사뭇 달라졌는데 송환법 철회 후 시위가 누그러진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조슈아 웡]]에 대해서 미국, 유럽, 대만 등 [[제1세계]]에서는 [[민주화]] 투사로 찬양하고, [[중국]] 내에서는 [[한간]], 즉 [[매국노]]로 부른다고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4195445|기사]]가 났다. 홍콩 정국이 혼란을 한바탕 겪은 와중에 [[홍콩증권거래소]]가 [[런던증권거래소]] 인수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런던증권거래소는 홍콩증권거래소의 피인수 제안을 거절하여 [[M&A]]가 무산됐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421&aid=0004195491|기사]]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하는 [[친중파(홍콩)|친중파]] 시위대 대부분이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삼합회]] 일원이다. [[7월]]부터 시작된 이른바 '''백색테러'''가 이들 삼합회가 한 짓이며 7월 21일 대규모 공격은 아예 무경대 장교가 지휘한 정황까지 있다. 그리고 외곽 지역들을 중심으로 친중파가 반정부 성향 시민들을 시비 끝에 공격하거나, 9월 송환법 철회 후 이른바 [[오성홍기]] 집회까지 조직하며 '''친정부 시위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기사가 났다. [[http://news.g-enews.com/view.php?ud=2019091500211156239ecba8d8b8_1&md=20190915002350_M|기사]] [[스티븐 로]] [[홍콩 경찰]]청장은 홍콩 경찰들한테 진압봉을 1만 개나 구입하여 뿌렸다. 이에 대해 [[민주파]] 홍콩 [[야당]]들은 [[인권]] 탄압에 사용하는 것이 명백하다며 비판했다. 이 인간은 진압봉을 구입하면서, 홍콩 경찰들이 퇴근할 때도 진압봉을 가져가게 했다. 이에 대해 홍콩 야권은 [[홍콩 경찰]]이 [[중국 경찰]]과 뭐가 다르냐고 비판하고 있다. [[http://www.opini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227|기사]] 또한, 스티븐 로는 [[홍콩 경찰]]에 뿌린 1만 개의 '''진압봉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영국]]은 이미 [[시위]] 진압 장비를 [[홍콩]]에 금수조치한 상태고, [[미국]] 역시 [[미국 하원]]에 [[홍콩]] 시위 진압 장비를 수출 금지하는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이다. 사실상 구입처는 [[중국 대륙]]이 확실한 상태다. 시위가 지속되면서 홍콩 정국이 불안해지자, 가장 안전한 도시 순위에서 2018년 9위였던 홍콩은, '''2019년 20위로 수직낙하'''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2&aid=0000392476|기사]] [[홍콩]] 시위대에 대한 친중파의 폭력은 한국에도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080931|기사]]로 났다. [[민간인권전선]]의 집회는 취소됐지만, 300명 정도의 영국 식민지 해외여권 소지자들이 아침에 주 홍콩 [[영국]] 총영사관을 찾아가 [[중영공동선언]]에 있는 [[일국양제]] 시스템을 보호하고, [[홍콩]] 시민을 도와 [[시진핑]]한테 정식으로 항의할 것을 촉구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9452972|기사]] 아주경제의 한 칼럼에서는, [[1997년]] [[홍콩 반환]] 때와 달리, [[2019년]] 홍콩은 중국 내에서 [[GDP]] 상 [[대도시]]로 불리긴 어려운 수준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 정부는 [[중국]] 본토 내에 홍콩의 시스템을 복제한 각종 금융특구를 추진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홍콩]]의 시스템을 [[중국]] 내의 다른 도시로 복제할 수는 있지만, 홍콩과 달리 [[중국공산당]]이 있는 한 시스템의 "공정성"은 보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였다. [[https://www.ajunews.com/view/20190914103836307|기사]] [[파일:5414254452541.jpg]] 결국 학생들을 주축으로 '''[[민간인권전선]] 없이 수 만 명 남짓 정도의 대규모 행진을 강행'''했다. 물론 170만 명이 모이던 지난 8월 18일 민전 집회에 비해서는 규모가 꽤 줄었다. 빅토리아 공원에 모인 수 만 명 남짓의 시위대는 근처 코즈웨베이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SCMP)는 전날 [[친중파(홍콩)|친중파]]의 시위대에 대한 폭력 행사와, [[홍콩 경찰]]의 일방적인 시위대 탄압에 분노하여 시위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politics/article/3027308/causeway-bay-shops-close-illegal-march-kicks-hong-kongs|기사]] '''코즈웨이베이 쇼핑몰들은 결국 이날 문을 닫았고, [[센트럴]] 지역의 상점들도 전면 폐쇄됐다'''. 민간인권전선이 빠졌기에 100만 단위의 시위가 나오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갈수록 시위 참가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SCMP는 지적했다. 결국 수 만 명 정도의 시민들이 모였으며 확실히 100만 명 이상의 규모보다는 줄었고 지난 9월 총파업 정도 규모다. 불법집회이기 때문에 체포를 우려해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다. [[파일:1c4ecf30-d769-11e9-a556-d14d94601503_image_hires_141022.jpg]] 이 와중에, 지난 [[7월]] 시위에서 시위대에 고무탄 총을 정조준한 라우 착 헤이(Lau Chak-kei)라는 이름의 [[홍콩 경찰]] 소속의 한 경찰간부[* 이 사람은 콰이충 지구 전투경찰대 소대장이다. 흰색 근무복은 간부고 하늘색 근무복은 일반직원이라 구별이 가능하다.]는 [[중국공산당]] 국영 [[TV]]인 [[CCTV]]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했다. CCTV는 이 장면을 소개하며, 심지어 별도의 프로그램까지 편성하여 고무탄 총과 실총인 [[리볼버]] [[권총]] 조준을 한 [[홍콩 경찰]]을 옹호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이 CCTV 인터뷰 행태는중공 지도부가 홍콩 경찰의 시위대에 대한 '''폭력 및 실탄 발포'''를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politics/article/3027311/hong-kong-police-officer-who-pointed-shotgun-protesters|기사]] [[홍콩]] [[지하철]] [[MTR(기업)|MTR]] 사장인 제이콥 캄(Jacob Kam)은, '''앞으로 [[네팔]] 출신의 구르카인들을 경비원으로 채용하기로 했다, 또한 민주화 시위에 긍정적인 직원들을 전원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캄 사장이 이렇게 설명한 이유는, 네팔인들은 원래 홍콩인이 아닌데다[* 홍콩 내 네팔인들은 [[홍콩 경찰]]의 PTU(전투경찰대)에 소속된 구르카인들과 그 가족들로 이들은 [[광동어]]를 배워서 현재 유창하게 구사한다. 즉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다. 문제는 홍콩인들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문제다. 이번 시위에도 네팔인 등은 부정적인 태도다.] 구르카인들은 출신이 원래 [[용병]]인지라 과격 시위대의 열차 및 역 점거 시도에 대해 가차없는 응징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시민단체 및 야당들은 '''[[인종차별]]적 발언인데다 사상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홍콩 사정을 잘 모르는 네팔인들을 경비원으로 채용 시 홍콩 시민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제이콥 캄과 MTR을 거세게 비난했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politics/article/3027269/mtr-chief-jacob-kam-takes-heat-plan-use-gurkhas-railway|기사]] [youtube(UDcF55GYyjA)] [[빈과일보]]에서 시위 현장을 중계하고 있다. 결과는 도심에서는 시위대가 정부청사 앞 대치 후 조기 퇴각해 놀랍게도 '''체포자 0명'''으로 끝났다. 충돌이 꽤 격렬한거 치고는 불상사는 없었던 셈이다.[* 부상자 대부분은 노스포인트 일대에서 발생한 친중파 폭력배들과 난투극 및 경찰 진압과정에서 나왔다. 물포차가 지근거리에 접근하자 중상 및 체포를 우려해 시위대는 자진 퇴각했고 퇴각 과정에서 바리케이드 여러곳과 폐쇄된 완차이역 출구 셔터 앞에 가연성 쓰레기를 쌓아놓고 방화를 한 후 퇴각했다. 방화벽을 쳐서 불이 번지진 않았고 소방관들에 의해 금방 진화되었다.] 그리고 늦은 밤 정작 엉뚱하게 외곽인 노스포인트 쪽에서 시위를 마치고 돌아와 전날 반달당한 레논 월로 갈려던 시위대 일부가 친중 [[삼합회]]와 충돌했고, 난투극이 벌어졌으며 삼합회에 항의하러 나온 지역 주민들까지 뒤엉켜 난장판이 만들어졌다 코즈웨이베이에서 이동한 폭동진압 경찰들이 [[최루탄]]을 쏴 해산시키고 양측에서 여러 명을 체포해갔다. [[대한민국]]에서도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3&aid=0009453028|시위가 보도]]되고 있다. [[홍콩 경찰]]이 시위를 불허하여 [[민간인권전선]]이 시위를 취소했음에도, 수 만 명(Tens of Thousand) 상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이는 [[홍콩 경찰]]의 편파적인 진압에 대항하여 동맹휴학 중이던 학생들 대부분이 참가 '''학생운동권에서는 대규모 시위 동력이 아직까지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홍콩 내 중고교 및 대학들은 '''동맹휴학'''중이다. 그 숫자가 거의 10만 명이 넘는 꽤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민간인권전선이 조직하지 않아도 동맹휴학 중인 학생들이 수만 명 정도는 동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468021|기사]] 그러나 170만 명이 나왔던 민전의 8월 18일 시위보다는 훨씬 줄어들었다. 송환법 철회 후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이 꽤 많고 30대 이상 어른들은 안전을 이유로 민전이 주최하는 것도 아닌 학생층 중심 시위는 참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 날 시위대는 거의 대부분 동맹휴학 중인 학생들이었다. 어른들은 폭력사태 및 체포를 우려해 나오지 않았고 전날 틴수이와이에서 열린 가족동반 집회에 주로 나왔다. 학생층이 나올 경우 과격시위가 꽤 있던 편이고, 경찰들도 송환법 철회 후 절박함이 사라지자 이제는 마음껏 무력진압이 가능해 처음부터 '''무력 강경진압 후 해산'''을 전제로 대비해 충돌이 불가피했다. 민전 집회는 어른들도 많이 나와 학생들을 통제할 수 있으나 이러한 자유 집회는 그딴 게 없어서 충돌 여지가 아주 크다. 이 날 수만 명 가량의 시위대는 코즈웨이베이 동부에서부터 시작해 센트럴 차터 가든까지 행진을 진행했으며 다시 애드미럴티 쪽으로 돌아서 정부청사 쪽으로 향했다. 경찰들이 정부청사 앞에서 최루탄을 쏘며 선제 무력진압에 나서자 시위대도 돌을 던지거나 바리케이드를 막아 응수했고 전술했듯 화염병도 던져졌다. 이 날도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얼룩진 셈이다. [[http://news.g-enews.com/view.php?ud=2019091520302399709ecba8d8b8_1&md=20190915203248_M|기사]] 물론 단 한명의 시위대도 체포되지 않았고 경찰과의 대치는 시위대의 퇴각으로 금방 끝났다. 현지시각 오후 4시부터 [[홍콩 입법회]] 및 정부청사가 [[애드미럴티역(홍콩)|애드미럴티역]] 앞 도로인 하커트 로드(Harcourt Road)는 시위대가 뒤덮었다. [[MTR(기업)|MTR]]은 오후 4시를 기점으로 [[홍콩섬선]] 애드미럴티역 및 완차이역을 폐쇄 조치했는데 경찰들이 게릴라 시위 방지를 위해 의도적으로 요청한 것이었다. 게릴라 시위는 이미 지하철 운행중단, 사전 잠복 후 불심검문과 대량 체포, 사복경찰 언더커버 투입 등으로 이미 무력화된 지 오래며 8월 31일 [[프린스에드워드역]]에서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후 다시는 하지 않고 있다. 시위대가 하커트 로드(Harcourt Road)도로 위에서 정부청사를 바라보며 멈추자, 경찰들이 옥상 위쪽에 대기시켜 놓은 저격수들에 의해 선빵으로 [[최루탄]]이 발사되었다. 그러자 시위대도 돌을 사람이 없는 안쪽으로 던지며 응수했고, 정부청사 외부 방호벽에는 화염병이 여러 차례 날아왔으나 위력이 약해 금방 꺼졌다. 지난번 170만 명이 모인 민전 8월 18일 집회에선 경찰들이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송환법도 철회되고 중련판을 통해 '''강경진압으로 법질서 회복'''이라는 지시도 내려온 이후라 경찰들이 대놓고 공격적 진압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 날도 역시 처음부터 강경진압을 전제로 했다. 그래서 시위대도 물대포가 2대나 나오고, 화염병에 맞은 물포차가 불에 타기는 켜녕 장갑이 두터워 별 영향이 없는지라 경찰들의 신경만 긁는 바람에 '''물대포+최루탄+형광물질'''의 3단 콤보가 나오자[* 물대포와 최루탄이 동시에 발사되자 물대포의 물에는 최루탄 성분이 섞여서 말 그대로 최루액 물대포가 되어버렸고, 이것에 형광물질까지 혼입되어 맞을 경우 퇴로가 막힌지라 경찰에 체포될게 뻔해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기자 1명은 이 최루액 물대포를 맞고 꽤 심한 부상을 입었다.] 시위대가 혼비백산하여 전속력으로 완차이 쪽으로 뛰어가며 퇴각했다. 애드미럴티역 폐쇄 후 일부 시위대가 퇴각 과정에서 역 유리창을 깨서 지하철 운행을 일방적으로 끊어 불편을 초래한 [[MTR(기업)|MTR]]사에 항의하였다. 그리고 퇴각하던 시위대 일부가 남색 옷을 입은 49세 친중파 남성과 시비가 붙었고 그를 '''집단구타'''했다!!! 그 남자는 루턴지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생명엔 지장이 없지만 꽤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역풍이 우려된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law-and-crime/article/3027364/hong-kong-protests-man-seriously-hurt-after-attack?fbclid=IwAR3y4urY51fAie7lq1sa_zMPIlqOLO8USlRNHHr8TPNHoia1jtFZRiOfGac|기사]]. 아니나다를까 지난 9월 파업 당시 연좌농성을 펼친 적도 있는 의료인들 중 600명 가량의 의사 및 간호사들이 연판장을 내어 '''폭력시위에 반대하고 경찰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일부 의료진이지만 사실 상 '''시위에 대한 지지철회'''를 나타내는 첫번째 공개성명이다. 과격 폭력시위에 대한 반감에서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며 지나친 과격시위가 이제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https://www.thinkhk.com/article/2019-09/16/36515.html?fbclid=IwAR1zL7cG7GKP4CyM_iY4cSrDxHfMtQCv3eroqzGnt4oJfX_Fm8f97fLE24I|기사]] 그리고 완차이역이 폐쇄되자 완차이를 거쳐 코즈웨이베이로 퇴각하던 시위대 일부가 셔터 앞에 쓰레기를 모아놓은 후 방화를 하였다. 역 내부가 아닌 바깥이었다. 물론 방화문으로 구성된 셔터는 별 피해가 없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불을 지르는 것이다. 가연성 쓰레기들을 모아놓아 연기가 조금 크게 났을 뿐 피해는 없었고 [[소방차]]가 와서 금방 꺼 버렸다. 그리고 다른 곳곳에도 방화벽을 치고 바리케이드에 일부러 불을 작게 내서 경찰 진입을 막으며 코즈웨이베이로 퇴각했으나 역시 소방관들이 금방 껐고, [[물대포]]차 2대 및 [[장갑차]] 2대가 바리케이드를 간단히 부수고 코즈웨이베이로 진격했다. 전술했듯 화염병에 맞았던 물포차는 장갑이 워낙 강해 멀쩡했고 시위대가 되려 경찰들 신경만 긁어버린 격이 되었다. 오후 6시, 코즈웨이베이 쪽으로 퇴각하던 시위대를 추적해 경찰들도 대거 이동했다. 다행히 시위대가 더 이상 충돌을 회피하여 체포된 사람은 없었으나, 시위대의 게릴라 시위를 우려해 코즈웨이베이역도 폐쇄해 버렸고 장갑차와 물포차가 증원되어 도착했다. 역이 폐쇄되자 시위대에 합류한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항의했으나 역 안에 있던 폭동진압 경찰들이 최루탄을 갈겨 해산시켜 버렸으며 장갑차 및 물포차 등장 후 코즈웨이베이는 정리를 완료했다. 한편 문제는 정작 외곽지역인 노스포인트에서 발생했다. 이미 8월 5일 총파업 때 [[삼합회]]와 무력충돌이 벌어졌던 곳이 노스포인트로 이곳에 사는 [[객가인]] 깡패들이 시위를 마치고 노스포인트 지역의 포트리스힐역으로 나와 전날 반달당한 레논월 근처로 가던 시위 참가자들을 역 입구에서 마구 두들겨 팼다. 시위 참가자들은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이었으며 폭동진압 경찰들이 최소 3명을 체포해 갔다. 그리고 노스포인트역 근처에서도 한 남자가 '''칼'''을 들고 나와서 경찰들이 출동해 노스포인트역 근처를 봉쇄하기도 했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politics/article/3027308/causeway-bay-shops-close-illegal-march-kicks-hong-kongs?utm_content=article&utm_medium=Social&utm_source=Facebook&fbclid=IwAR1x52K2T5udc9daQ-WSW7XJ8DnNno-8cCKtvGnBnbl-zPCJTsr1064WnSw#Echobox=1568550167|기사]] 결국 노스포인트 쪽에서도 경찰들이 최루탄을 쏴서 삼합회와 싸우던 시위대, 그리고 삼합회의 폭력에 항의하던 지역 주민들도 모두 해산시켰고 시위 참가자 수 명을 체포했다. 격렬한 정부청사 앞 대치에도 불구하고 도심쪽 시위는 결국에는 체포된 사람 하나 없이 끝난것과 달리 정작 문제가 엉뚱한 쪽에서 생겨버린 셈이다. [[싱가포르]]에서 미국상공회의소가 [[미국]] 기업 120곳에 대해, [[홍콩]] 정국 불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다. [[https://www.scmp.com/week-asia/economics/article/3027280/how-bad-it-hong-kong-depends-where-you-are-when-asked-singapore|기사]] 설문에 응답한 [[미국]] 기업들은 [[홍콩]] 시위가 지속될 경우 [[아시아]] 투자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걱정에 대한 온도차는 있었다. [[홍콩]]에 사업장을 둔 기업들이, 홍콩에 사업장이 없는 기업들보다, 상대적으로 홍콩의 상황을 덜 걱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콩에 사업을 운영하는 회사들 10곳 중 7곳은 현재 상황에서는 홍콩 투자를 철회할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홍콩 정국 불안이 향후 투자 결정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응답은 75%에 달했다. 홍콩에 사업장이 없는 기업들은, 홍콩 정국 불안이 향후 투자 결정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응답이 90%에 달했다. 전술했듯 현장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그렇게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홍콩 정국 불안이 미중 무역분쟁 등과 엮여서 아시아 투자 자체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전면 철수가 아닌 [[동남아시아]]에 분산투자를 할려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이런 결과가 놀랍지 않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Chua Hak Bin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홍콩에 투자를 한 기업의 경우, 홍콩의 미래에 투자를 했고, 이미 매몰비용이 있기 때문에 사업소를 이전하기 쉽지 않을 것"이고, "홍콩에 사업장이 없는 기업들에 비해 홍콩에 사업장이 있는 기업들은 '''더 파괴적인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 응답했다. Song Seng Wun 이코노미스트는 "홍콩에서 지금 당장 철수할 경우, 나중에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분석하였다. 반면, OCBC의 Selena Ling 전략책임자는 이번 설문조사 자체의 '''타당도와 신뢰도가 낮다고 지적'''했다. 먼저 신뢰도 문제로, 고작 120곳에 불과한 응답자를 가지고 해당 결과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타당도 문제로, [[설문조사]]를 하는 [[질문지]] 자체가 제대로 설계된 것인지 검증하는 작업이 없었다.[* 신뢰도 및 타당도 문제는 [[질문지법]] 및 [[사회조사]] 문서 참고.]며, 이에 따라 충분히 광범위한 응답을 얻었다는 보장이 없어, '''설문조사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당초 우려와 달리 '''홍콩이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입지를 상실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며, 사실 이제 와서 다국적 기업들의 철수도 쉽지 않다. 철수할 경우 분명 다시는 못 돌아올 것이 뻔한데다 홍콩 자체의 입지 경쟁력인 중국으로 가는 관문이라는 메리트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그래서 차라리 분산투자를 할지언정 전면철수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에서는 [[홍콩]] 시위대들이 왜 [[쇼핑몰]]에서 시위를 하는가에 대한 대답도 제시되었다. 홍콩의 주거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중국]]계 부동산 개발기업'''[* [[홍콩]] [[재벌]]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중국계 부동산 개발기업들이 진짜 문제다. 중국계 부동산 기업들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신계(홍콩)|신계]]의 부동산들을 싸그리 매입해서 대대적인 [[부동산]] 개발을 했다. 그리고 [[분양]]가를 미친듯이 끌어올려서 홍콩 부동산 가격 폭등을 촉발시켰다. 그 이후에 이들 회사들은 [[중국은행]] 홍콩지사를 통해 중국으로 부동산 개발 이익을 송금하고 일부분은 [[중국공산당]]에 [[뇌물]]로 바쳤다.]들에 대대적인 특혜를 주고 홍콩 주거문제는 그대로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원인은 중국인데, 빈곤지역에 사는 [[홍콩]] 청년이나 청소년들을 신화통신, [[인민일보]], [[환구시보]], [[CCTV]] 등을 통해 비하하고 중국의 적으로 만드는 프레임 설정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 [[청년]], [[청소년]] 계층의 대대적인 반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politics/article/3027265/beijing-making-hong-kongs-property-tycoons-sweat-bricks-it|기사]] 즉 이번 시위는 시작은 송환법에서 시작했으나 실은 홍콩 내 고질적인 문제들 이른바 '''적폐'''가 터진 것이다. 홍콩 민주시위에 대해, [[캐나다]] [[밴쿠버]]에서 [[민주파]]와 [[친중파(홍콩)|친중파]] 인물이 [[버블티]] 회담을 했다는 [[https://www.scmp.com/news/china/society/article/3027025/bubble-tea-summit-brings-together-pro-hong-kong-and-pro-china|기사]]도 났다. 한편, [[홍콩증권거래소]]의 [[런던증권거래소]] [[M&A]] 관련한 런던거래소의 입장이 나왔다. [[런던증권거래소]]는 성명을 내고, [[홍콩증권거래소]]의 인수 제안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신용]]할 수 없어서 [[M&A]] 제안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런던거래소는 홍콩거래소가 장기적 관점에서 중국에 대한 전략적 관문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시위가 장기화되는 등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홍콩 입지가 약화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런던거래소는 “우리는 중국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창구로 홍콩보다 상하이가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며 “[[상하이증권거래소]]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15&aid=0004208736|기사]] 민간인권전선은 [[9월 29일]] 다시 한 번 대규모 반중 민주시위에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대만]] 등의 국가와 더불어 '''[[한국]]'''에서도 연대시위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8&aid=0002468021|기사]] 학생들로 구성된 자유시위는 오히려 폭력사태만 나고 경찰의 무력진압만 계속되는 관계로 민전은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태도이며 다시금 전면에 나서 과격 시위대를 자제시키고, 정부에 강한 요구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만]] [[타이베이시]] 최대의 번화가인 [[시먼역|시먼딩(西門町)]]에서 홍콩 시위에 연대한 소규모 시위가 있었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politics/article/3027343/small-group-taiwanese-gathers-taipei-sing-songs-support|기사]] [[2019년]] [[8월]] [[홍콩 국제공항]]의 여객 처리량이 [[대침체]] 직후 연도인 [[2009년]]의 감소율과 맞먹는 정도로 감소했다고 한다. 599만 명을 처리했는데 이는 전년 동월([[2018년]] [[8월]]) 대비 12.4% 감소한 수치이다. 감소율은 [[2009년]] [[6월]] 이후 10년 2개월만에 최대였고, 감소폭은 무려 85만 8,000여명이 감소하여 역대 1위였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transport/article/3027317/hong-kong-international-airport-posts-biggest-monthly-drop|기사]] [[HSBC]]의 회장 Mark Tucker는 [[상하이시]]에서 진행된 [[중국]] [[CCTV]]와의 인터뷰에서 홍콩 시위대를 비난했다. 홍콩은 [[일국양제]] 시스템 하에서 유지되어야 하며, 폭력 시위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HSBC]]는 [[중국]]과 [[홍콩]]의 미래를 확신하며 __중국 내륙으로 투자를 더 확대할 것__이라고 밝혔다. [[https://www.scmp.com/news/china/politics/article/3027341/hsbc-chairman-mark-tucker-condemns-violent-protests-hong-kong|기사]] [[홍콩]] 재무장관인 폴 찬(Paul Cha)n은 [[미국-중국 무역 전쟁]]으로 홍콩 경제가 악영향을 받는 와중에, [[2019년]] [[6월]]부터 진행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로 인하여 홍콩 내부 경기도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는 [[신계(홍콩)|신계]] 지역 위주로 [[MTR(기업)|MTR]] 노선을 확충하고 [[아파트]] 건설 투자를 늘리는 등 [[인프라]] 사업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추가경정예산]]을 작성하여 [[홍콩 입법회]]에 제출하여, 빠른 시간 내에 승인되면 [[2019년]] [[홍콩]] 경제 성장률을 0.2%p 정도 상승시킬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https://www.scmp.com/news/hong-kong/hong-kong-economy/article/3027348/hong-kong-financial-secretary-paul-chan-pledges|기사]]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중국 무역 전쟁]]의 격화와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대한민국]] [[무역]] 전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외 변수[* [[홍콩]] 시위 때문에 [[대한민국]]의 [[중화권]] [[무역]] 전체가 급격한 축소를 겪고 있다.]라며, 한국은행은 이런 대외 [[리스크]]를 적절하게 통제하기 위해 경계감을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1968732&thread=10r02|기사]] 영국 총영사관 앞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시민들은 [[테레사 메이]] 내각에서는 [[제레미 헌트]] 외무장관 주도로 적극적으로 홍콩 민주시위를 옹호했지만, [[보리스 존슨]] 내각에서는 홍콩 민주시위에 대해 입을 닫아버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보리스 존슨]] 내각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결국 반정부 시위대 측의 [[미국]] 의존성이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421&aid=0004196130|기사]] 실제로 미국은 중국의 홍콩 통제를 억제할 수 있는 법률인 홍콩 인권 민주법안 통과를 앞두고 있고 물리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또한 주간 시위에서 [[한국]] 시민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연설도 있었다. 한국 측 인물들의 경우 [[8월 30일]] ~ [[9월 1일]] 3일 간 시위에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이 참가한 데 이어, [[9월 15일]] 시위에는 [[김의성]]이 [[문화방송]]의 지원을 받아 참가하였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1&oid=001&aid=0011081336|기사]] 이날 시위가 끝난 이후, 다음날 홍콩 시위대 내부 [[SNS]]를 통해 시위대 추산 인원을 스스로 공개했다. 민간인권전선이 지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날 시위는 [[센트럴]], [[스탠리]], [[몽콕역|몽콕]], [[프린스에드워드역]], [[9월 14일]] 친중파의 폭력이 있었던 노스포인트[* 폭력배들과 난투극이 벌어진 곳은 코즈웨이베이보다 더 외곽인 노스포인트로 포트리스힐역 근처와 노스포인트 페리터미널 근처 등이다.] 등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있었다. 때문에 시위대 추산도 꽤나 오래 걸렸다. 최종적으로 센트럴 시위 20만 명, 코즈웨이베이 3만 명, 프린스에드워드역 2만 명 등 총 '''30만 명''' 정도의 시위대가 집결한 것으로 추정했다. 체포된 사람은 센트럴 시위에선 아무도 없었고 나중에 폭력배들과 난투극이 벌어진 노스포인트에서 수 명이 체포되었다. 30만 중 대부분은 틴하우에서 열차를 타고 집에 갔다. 즉 [[민간인권전선]] 없이도 수십만 단위의 시위가 벌어질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미 학생운동권은 9월 13일까지 정부 응답이 없을 시 행동 강도를 높이겠단 선언을 했으며, 현재 동맹휴학 중인 학생들 덕분에 백만 명이 넘는 대규모 시위까진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학생들을 긁어 모을수 있는 것이다. 물론 민전 주최에 비해 경찰과 충돌위험 역시 큰 것도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